볏짚을 엮어 얹은 이엉은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고, 크고 작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담장은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왔다. 조상들의 삶의 지혜이자 공동체 정신을 이어온 산물이다.
최근 아산시는 외암마을 초가이엉잇기와 돌담쌓기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한 ‘미래 무형유산 조사 연구용역’을 완료했다. 이번 연구는 외암마을 전통건축기술의 가치를 검증하고 지속 가능한 전승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추진했다.
연구진은 전국 최대 규모의 외암마을 초가이엉잇기와 돌담쌓기가 지역 특성에 맞게 독창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킨 ‘기술적 탁월성’, 또 현재 주민의 일상 속에서 이뤄지는 ‘현장성’에 주목하며, 국가무형유산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조사 결과, 외암마을의 초가이엉잇기는 서까래에 줄, 연목 등을 설치해 연결하는 충청도 방식을 그대로 계승했으며,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던 지역의 이엉잇기와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
2024년 기준 전국에서 93곳(경기·충청 26, 강원도·울릉도 6, 전라도 24, 경상도 23, 제주도 14)이 초가이엉잇기를 관리 중이며, 이중 주민 중심의 보존회가 운영하는 곳은 외암마을을 포함해 단 5곳 뿐이다.
돌담장 쌓기의 경우 전국 67곳(경기·충청 17, 강원도·울릉도 4, 전라도 18, 경상도 16, 제주도 12) 중 위탁방식이 아닌 보존회가 직접 관리하고 전승하는 곳은 외암마을과 제주 성읍마을 두 곳에 불과하다. 외암마을이 ‘숨 쉬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전국 최대 규모, 보존회 중심 전통건축기술 전승 ‘희귀’
국가무형유산 지정 ‘충분’…재료 수급·전문인력 양성 과제
연구진은 △세제 혜택·보수비 지원 등 초가 소유주 지원책 마련 △국가유산기본법 개정을 통한 초가밀집지역 보존지구 지정 등 법적·제도적 기반 강화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긴 볏짚과 자연석 같은 재료 수급이 불안정하다. 연구진은 "계약재배와 품종 관리, 유통 체계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장인 고령화가 심화되는 만큼, 청년층을 대상 전수 교육과 전수관 설립도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유아~초등 학령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전통교육 및 체험프로그램, 문화공연 등을 개발하고, 국가유산청의 ‘미래 무형유산 발굴·육성 사업’과 ‘생생 국가유산 사업’ 등에 공모하는 로드맵도 마련했다.
지난 7월 열린 외암마을 초가이엉 및 돌담장쌓기 학술대회에서도 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유사 기술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지만, 외암마을은 공동체적 전승 기반이 유지되는 드문 사례”라며 희소성을 인정했다.
류용환 목원대 역사학과 교수는 "외암마을 전통건축기술 전승 체계 구축과 재료·인력 개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며 "정기 교육과 워크숍 운영을 통해 주민 참여와 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외암마을 전통건축기술을 ‘전승취약종목’이나 ‘긴급보호무형유산’으로 지정하고, 전수교육관 건립·디지털 기록화·전통건축 워크숍 운영 등 교육·홍보 프로그램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는 이번 연구성과를 토대로 전문인력 운영설계, 조례 정비안 마련, 초가이엉잇기재료의 재배·유통 협력망 구축, 디지털 아카이브 플랫폼 조성, 상설 시연·교육 프로그램을 순차 추진해 지역 공동체가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전통기술 전승 모델을 확립할 계획이다.
아울러 충남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받고, 긍극적으로는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승격하는 사업을 단계별로 추진할 방침이다.
김은성 아산시 문화유산과장은 "외암마을의 초가이엉잇기와 돌담쌓기는 지역 공동체의 삶을 이어온 생활 유산”이라며 "지역공동체가 주도하는 지속가능한 전통기술 전승 모델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